카테고리 없음

하나님의 소중한 그릇

Hernhut 2008. 12. 8. 17:03

하나님의 소중한 그릇

 

 

여호수아서를 보고 사사기를 볼 때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 그들은 그 땅을 점령할 목적으로 그들의 적들을 전멸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분의 명령들과 그분을 계속해서 따랐다면 그들의 적들을 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방황을 했고, 빗나갔으며, 믿음이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적들에게서 압박을 받게 되었고, 적들을 몰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그분이 돌이키시어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었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다시 불순종했고, 그들의 영적 상태는 실패와 더불어 악화되었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는 강이 없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눈으로는 옳다고 하더니”라고 했는데 사사기에는 한 문구로 4번 기록되어 있습니다(삿17:6, 18:1, 19:1, 21:25). 사사는 임시직이었으며 다만 긴급대책을 취할 뿐이었으나 왕은 영속적인 직이었고 하나님의 목적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사사는 결코 사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분의 왕의 목적을 이끌게 할 육적인 그릇을 찾고 계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러한 그릇을 사무엘에게서 찾으셨습니다. 우리는 2천년 동안 교회 시대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나 현재 복 있는 은혜의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를 통해서 우리를 되찾으셨습니다. 교회시대 처음에 120명이 다락방에서 한마음으로 일치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한 영(靈) 안에서 그들은 모두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 37년 동안 복음은 예루살렘부터 마침내 세상 끝 로마에게 까지 전파 되었습니다. 로마의 교회는 여호수아서의 이스라엘과 같았으며, 교회를 위해 그녀의 소유지 안으로 들어갔으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부유들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역사는 그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받고 있습니다(엡1:3).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게 하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엡3:8). 그러나 교회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약속 유지를 실패하신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의 적들에 의해 억압받게 되고 또 교회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지배되지 않는 반면 그녀는 억압을 받았다. 하나님은 교회의 많은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시어 부흥의 자비를 그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풍성을 조금 누리게 되었으며, 그녀의 적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흥들은 오래가지 않았고,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 비상대책들처럼, 하나님은 교회에 교회의 역사 안에서 약간의 임시로 압박을 완화하는 구원을 주셨습니다. 교회시대의 2천년 후 우리는 주님의 왕국 안에서 하나님 강림을 보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분은 은혜의 시대에서부터 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가져오시기 위해 움직이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과거에는 그릇이 한 사람이었으나 이 종말에는 단체적인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체적인 소중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세상은 끝이 다가오고 있으며 주님의 오심은 곧 다가올 것 같습니다. 변화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그분은 그 시대를 변화시킬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1. 소중한 그릇이 태어남

 

사무엘 상 1:1~20을 읽겠습니다.

이제 에브라임 산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랏 사람으로 엘가나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녀가 있으나 한나는 자녀가 없더라. 이 사람이 매년 자기 도시에서 나와 실로에 계신 만군의 주께 올라가 경배하며 희생물을 드리더니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기서 주의 제사장으로 있었더라. 엘가나가 봉헌하는 때에 자기 아내 브닌나와 그녀의 아들딸들에게 몫을 주었으나 한나에게는 상당한 몫을 주었으니 이는 그가 한나를 사랑하였음이라. 그러나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니 주께서 그녀의 태를 닫으셨으므로 그녀의 대적(對敵) 또한 그녀를 심히 자극하여 애타게 하였더라. 매년 한나가 주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와 같이 하므로 브닌나가 그녀를 자극하니라. 그러므로 그녀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녀의 남편 엘가나가 그녀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당신의 마음이 괴로우냐? 내가 당신에게 열 명의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이에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나니라.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주의 성전 기둥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혼이 괴로운 가운데 주께 기도하고 심히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주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사내아이를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토록 그를 주께 드리고 삭도(削刀)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녀가 주 앞에 계속해서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녀의 입을 주시한즉 이제 한나가 마음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그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녀가 취한 줄로 생각하여 엘리가 그녀에게 이르되, 네가 어느 때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영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다만 주 앞에 내 혼을 쏟아 놓은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벨리알의 딸로 여기지 마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너무나도 원통하고 괴롭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네가 구하여 청원(請位)한 것을 주시기 원하노라, 하매 그녀가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의 눈앞에서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그 여인이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슬픔이 없었더라.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자기 아내 한나를 알매 주께서 그녀를 기억하셨으므로 한나가 수태하여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주께 그를 구하였다 하였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소중한 그릇이 되도록 높이셨습니다.

이 모임에서 우리가 사무엘을 만날 것인데:

1. 소중한 그릇이 태어남인데 이것은 이 메시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2. 소중한 그릇 만들기

3. 소중한 그릇 훈련 등이 전달될 것입니다.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은혜”의 뜻을 가진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였고, 브닌나는 많은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율법 아래에서 한나는 아이 낳지 못함의 저주받음을 고민해 오고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며, 많은 아이들을 낳는 복을 받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여 불행할지라도 그녀가 은혜롭다는 그녀의 이름에 진리를 취했고, 주님에게도 머물렀습니다. 브닌나는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함을 인해 핍박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죄로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상황은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녀는 복을 받은 사람의 부류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사랑하는 어떤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복을 얻었으나 그들이 십자가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열심히 있고 주님을 찾고 있지 않으나- 생각하건대 복과 열매 둘 다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헷갈리게 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 성내기 쉬우며, 보기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포기하지 않고 결코 하나님께 성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아이를 낳지 못하는지 알고 싶어 계속해서 하나님께 갔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끈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침내 그녀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 원리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후에 찾아야할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원리 위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하나님에 관해서 물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사사에서 왕으로 시대를 변화 시키시고 계셨습니다. 사사의 임시적인 직분은 곧 끝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마지막 해결책은 하나님의 왕 안에서 찾으셨고 머지않아 오게 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은 소중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한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한나에게 분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나가 결코 성내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목적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필요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 또한 그 자신의 필요 또한 가지고 계십니다. 마침내 그것은 하나님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 그녀의 필요이었습니다. 그녀의 추구는 그녀 자신을 위한 것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만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한 아이를 주시면, 그를 주께 돌려 드리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의 태어남은 그의 어머니의 효과적인 기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보편적인 삶의 법칙은 진통 없이 출생하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생명의 출생을 원한다면 거기에는 진통을 해야만 합니다. 한나의 해산하는 수고의 기도로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생활의 원칙인데 여러분이 열매를 갖기 원한다면 해산하는 수고의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기구(단체)는 열매 맺는데 필요하지 않는데 그것이 생활에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열매는 하나님의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입니다. 주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해산의 수고로운 기도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도 진통하셨습니다. 커다란 어두움 가운데에서 주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옵니까!”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어두움은 해가 숨어서 나타나게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 하나님 또한 고통하심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분의 아들이 십자가로 감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동되셨습니다. 또한 오순절 날에 120명의 마음에 위에서부터 “강한 호흡”으로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고통으로 태어났습니다. 120명 또한 다 함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과 함께 합력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고통에 감응되었습니다. 어디에나 교회의 세워짐이 사실이고, 진정한 해산의 수고가 그 뒤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이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것을 부담을 갖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이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타락하여 가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많은 눈물로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수고로운 기도는 그의 길을 고집하는 것으로부터 인도하시도록 하는 것과 그를 주님에게 드리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소중한 그릇을 만드시고 있을 때, 한나는 여러 관점에서 합력하였습니다.

 

첫째로 중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소중한 그릇은 은혜에게서 나오고, 은혜는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우리 안에서 열매 맺기까지 기도 안에서 수고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은혜입니다. 한나는 은혜의 이 원리에 증거가 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 결코 화내지 않았던 그 곳에 그녀를 오도록 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지체하심에 성내게 되어서 시험받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는 한나가 하나님께 결코 성내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응답을 위해서 기도 안에서 수고를 하도록 가능하게 했습니다.

 

둘째로 한나는 믿음의 여자였습니다.

후에 엘리가 주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말하니 즉시 그녀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고, 그때부터 그녀가 먹기 시작했습니다(삼상1:17~18). 이것은 그녀의 강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한나는 지혜의 여자였습니다.

사무엘상 2장 1절에서 그녀의 기도는 성경에서의 큰 기도 중의 하나이며, 그 기도는 그녀의 영적인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함께 그녀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또한 하나님의 길을 계시합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가 승천하시기 전에 첫 번째 오심을 나타냈습니다. 먼저 그분은 우리에게 죽음으로 주셨고 그가 우리에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2:6~8). 우리가 성내지 않고 그분의 길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합니다. 십자가가 면류관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내려다보거나 오해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알아야 할 영적인 지혜가 필요합니다.

 

넷째로 한나는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기도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왕을 보내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2:10b). 한나의 아들은 하나님의 소중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로 한나는 성실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서원함으로서 그녀 자신의 아들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의 다리 위에 살고 있고, 하나님은 소중한 그릇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한나가 소중한 그릇으로서 사무엘을 낳은 한나처럼 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나가 없이는 사무엘이 없었을 것입니다. 신약에서 이 원리의 예를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삶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아내 엘리사벨은 한나처럼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며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나이들은 스가랴가 그가 퇴직하기 전까지 그의 제사장 장막에서 제사를 지내는 봉사를 하였습니다. 새벽이 오기 전에 제사장들은 보통 그들의 다양한 제사를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가장 복을 받은 제비가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가까운 곳이었던 향단의 금제단에 향을 피울 사람을 위해 뽑았습니다. 이 특별한 제비를 받은 어떤 제사장은 그의 일생에 딱 한 번 이 일을 했습니다. 스가랴는 결코 이 일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많은 제사장들이 향을 피울 기회를 결코 가지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나라를 대표하여 금제단에 향을 피울 기회가 주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개인적인 아들의 필요에 대해 그를 위한 기도할 시간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가의 필요를 위한 구국기도를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필요는 오직 메시야 오심에 만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천사가 스가랴에게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말했는데 그가 “아들을 얻을 것이라”였습니다. 한나의 기도와 너무나 똑같은데 스가랴와 엘리사벳은 소중한 그릇으로서 태어나게 될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처럼 소중한 그릇이었던 침례자 요한은 율법과 선지자를 끝냈으며 메시야를 예비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소중한 그릇을 가져오는 사무엘과 침례자 요한이 되는 것을 기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이 될 수 있기 전에 한나가 되어야만 합니다. 은혜의 원리가 우리의 생활에서 첫 번째 일로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가 겸손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또한 기꺼이 겸손해야만 하고 심지어 굴욕적으로 낮아져야만 합니다. "Beyond Humiliation"라는 표제를 붙인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우리가 더 이상 굴욕적인 것을 당할 수 없는 지점에서 자존심을 꺾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받을 수 있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위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역하는 것과 십자가의 인내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나타내시고 고통을 나누어 주시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 응답에서 소중한 그릇이 얻게 것입니다. 아마 주님은 소중한 그릇으로서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준비시켜서 그분의 왕국을 가져오심과, 기도로 수고하며, 끝까지 기도하는 부담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