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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3:4

Hernhut 2007. 1. 21. 20:38

And John himself was clothed in camel's hair, with a leather belt around his waist: and his food was locusts and wild honey.

=And the same John had his raiment of camel's hair, and a leathern girdle about his loins; and his meat was locusts and wild honey.

이 요한은 낙타의 털로 짠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그의 허리를 위하여 가죽 띠를 띠고 그의 음식으로는 메뚜기와 석청이 있었다.

오늘 나는 요한의 사막생활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그는 낙타의 털로 짠 옷을 입었다. 이 말은 어떤 의미를 가리키는가? 이 의미는 사막에는 가축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은 낙타가 가장 적합했다. 쉽게 구하고 길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의 시대에는 낙타는 부정한 동물이었다. 부정한 동물은 율법의 의해 먹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부유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침례 요한은 낙타의 털로 짠 옷을 입었는가?

과거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이 가장 먼저 취했던 것이 바로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부끄러움을 가렸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3:21).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계시를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의 보호 때문일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실 그것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부끄러움은 죄를 통해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죄를 부끄러워해서 옷을 입게 된다. 그런데 낙타의 털옷은 희생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다. 구약에서 제사장들의 복장을 만드는데도 역시 금실로 짠 의복을 입힌 것을 볼 수 있다(출39:1~5).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입힐 옷은 가죽 옷이었지만 요한이 입은 옷은 낙타의 털로 짠 옷인 것이다. 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성분 즉 십자가를 체험하고 그분의 희생을 체험과 부활하셨음을 말한다. 또 만약 짜지 않고 천으로만 두르고 있었다면 그것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다루심을 입지 않음을 나타낸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외적인 표현이다. 분명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또 요한은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 이것은 진리를 의미한다. 진리는 곧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인의 허리띠는 대부분 전투하기 위해서 띤다. 전투를 잘하기 위해서는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투에서 진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여지없이 패한다. 진리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다. 말씀이 육신이 되실 때 은혜와 함께 충만케 되신 것이 진리이다(요1:12). 우리는 말씀을 취해야 한다.

요한은 금식하지 않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사막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은 사실 부정한 음식을 먹음과 같다. 이제 율법적인 음식을 취하기를 원치 않았다. 우리도 역시 율법적으로 살기를 거부해야 한다. 요한은 거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이 거친 음식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유지시켜 줌을 알아야 한다. 가공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먹기 힘든 음식이 그리스도를 누리게 한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것은 아직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요한처럼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을 취하여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