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웹스터는 이 단어를 『자신이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거나 비난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또한 웹스터는 과거의 행동이나 의도에 대해 후회와 불만을 느껴서 마음을 바꾸거나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회개는 이 땅 위의 것에서 하늘의 영역의 것으로 자신의 애정을 바꾸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신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경건한 슬픔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는 자신에 대한 올바른 태도입니다. 탕자는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회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입니다. 빌립보 감옥장은 바울과 실라를 같은 시간에 데려가 그들의 줄무늬를 씻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경건한 슬픔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10에서 고린도인들에게 경건한 슬픔은 회개를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하며 회개할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회개는 우울한 절망이 아닙니다. 유다가 스승을 은 삼십 개에 팔았을 때 그는 우울과 절망에 가득 차 자살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죄를 잠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행위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180도 회전입니다. 회개는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민수기 32:23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다윗의 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죄를 숨기는 것은 흘린 씨앗을 숨기기 위해 덮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은 돋아나 드러나게 됩니다.
회개는 변화를 증명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사도행전 19:19에서 회개는 은화 5만 개에 달하는 책을 가져와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움으로써 증명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변화를 알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우상에서 돌이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진심을 보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9.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첫 번째 편지를 썼고 그들의 죄악스러운 행위에 대한 통렬한 비난을 포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일부는 그들이 추악한 생활 방식에서 돌이킨 것을 칭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한 사람에게 『오늘 포도원에서 일하러 가거라』고 하니, 그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회개하여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21:28, 29에 나와 있습니다. 이 젊은이가 무엇을 했든, 예수님은 그가 회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행동을 회개라고 불렀습니다. 그 젊은이는 그 문제를 숙고한 후,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결론에 도달한 젊은이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행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짓고,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죄에서 돌이켜 의로움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바울이 아레오 언덕에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말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해 그들과 논쟁할 때,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아테네 사람들이 그 당시에 연루되었던 그런 무지함을 눈감아 주셨지만, 지금은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고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21:17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도행전 21:30을 언급합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복음에 순종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침례를 받았지만 나중에 금과 인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성령의 은사를 사고 싶어했습니다. 이때 시몬의 마음이 진실하고 순수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이 때 시몬의 마음을 확실히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베드로에게 시몬에게 『그러므로 이 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혹시 네 마음의 생각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라고 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사도행전 8:22). 시몬은 먼저 기도하라는 지시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회개하거나 태도와 욕망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이 행위에 대해 적절한 슬픔을 나타내고 자신의 계획이나 원칙이나 행동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모든 불의한 사람들이 회개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일입니다. 그들은 기다리거나, 읽거나, 기도하거나, 경험을 얻거나, 회개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계시를 전하라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불의한 존재들은 회개하고, 애정을 바꾸거나,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사람이 회개할 때에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사랑하고 계속해서 죄를 행하기로 결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요한복음 9:31; 베드로전서 3:12)
회개에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은 그가 듣고 믿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의 응답의 첫 걸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듣고, 인간의 구세주이십니다. 권력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 의해 인도된 것은, 아버지와의 이전 관계로 회복되도록 이끄는 최초의 행위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회개하거나 멸망해야 합니다. 정말 간단합니다. 둘 중 하나라는 명제와 같습니다. 사람은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모든 곳에서 회개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으니, 그분께서 정하신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7:31). 하나님의 선하심은 모든 사람을 회개로 인도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9에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애정을 바꾸는 것이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떠나 구주를 섬기면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고 누가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그의 기록 13:3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나쁘지만,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것은 더 나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기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인간의 의지력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을 요구합니다. 회개의 거룩한 요구는 많은 고상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에서 멀어지게 했습니다.
회개는 모든 인류에게 부과된 의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며,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와야 할 책임을 지고 회개하기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전 세계에 사명을 주셨을 때, 『모든 민족에게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 사함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24:47).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곳에서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고 말했습니다(사도행전 17:30). 이 성경을 읽고 회개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회개에 대한 오해 중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회개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첫째, 회개는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펠릭스의 죄를 책망했고, 펠릭스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습니다(사도행전 24:2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악을 생각하면 두려워하지만, 펠릭스처럼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희망 없이 죽습니다.
둘째, 회개는 단순히 죄를 지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살해한 자들은 오순절에 슬퍼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가 했을 때 그들은 경건한 슬픔으로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사도행전 2:38). 그들의 슬픔은 복음 전파에 대한 믿음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경건했지만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셋째, 회개는 단순히 삶의 개혁이 아닙니다. 사람은 죄를 끊었지만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 특정 죄가 자신의 사업이나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게 만들기 때문에 그만둘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기적인 이유로 자신의 삶을 개혁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개혁은 회개가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서 회개는 경건한 슬픔(고린도후서 7:10)에 근거한 마음이나 의지의 변화이며, 그리스도께서 지시하신 삶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사도행전 26:20).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회개의 모범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서 일하러 가라,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후에 그는 회개하고 갔느니라』(마태복음 21:28, 29). 이 소년은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아버지께 불순종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책임이 있는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리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바꾸어(회개하여) 자신이 하지 않겠다고 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회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심판을 받고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파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요,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태복음 12:4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에 회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보시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셨다』(요나 3:10). 하나님의 선지자의 전도는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었고, 이 변화는 그들을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했습니다. 이 마음의 변화는 회개였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회개로 이끄는 수단으로 두 가지 동기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 동기는 두려움입니다. 성경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하리니 이는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선하든 악하든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두려움을 알고 사람들을 설득하노라』(고린도후서 5:10, 11). 이 말과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경고는 우리를 회개하도록 움직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는 것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로 인도함을 알지 못함이로다』(로마서 2:4)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의 삶을 연구하고, 그의 이 땅 위 순례를 통해 나타난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를 따라 갈보리로 가서 그가 그곳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불쌍한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왜 이 모든 사랑의 흐름, 왜 이 모든 선하심의 표현이냐고 묻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오 나의 혼이여! 그리고 그 답은 성경에서 다시 나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이들을 회개로 인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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