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교회

무엇이 교회인가?

Hernhut 2013. 4. 12. 20:07

 

무엇이 교회인가?

예수의 교회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연구

예수께서 건축하신 교회에 관을 말을 할 때 복음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적인 교회 사이에는 무엇이 다릅니까? 교파나 개인적인 무리가 교회입니까? 성경적인 지역 모임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무슨 조직과 사역이 교회를 가져야 합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인 각자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현대의 모든 교파 중의 한 곳에 가입해야 되나요?

 

서론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16:18)

예수님은 그분이 자신의 교회를 건축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지한 모든 성경연구가들은 그분께서 1세기에 자신의 교회를 건축하셨다는 것을 동의합니다. 그 때에는 거기가 예수께 속한 유일한 한 교회이었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한 교회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 교회에 관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3:10~11)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의 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교회를 계획하셨습니다. 확실히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가 교회에 관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만 합니다.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인 신약성경에서의 교회라는 단어는 어떤 특별한 이유로 함께 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말합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그 단어는 자신들의 죄를 용서함 받는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함께 모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갖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본질을 놓친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의 건물을 말할 때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지체들이 구원받는데 필요하지 않은 요소라고 교회를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특정한 교파로 교회를 생각합니다. 침례교, 감리교, 루터교, 성결교, 순복음,

다른 사람들은 다른 모든 교파들을 함께 구성하는 것을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각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교회와 각 사람들 사이에 다르지 않다고 보고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교회가 기능을 발휘하는 단체라고 부정합니다. 또 그들은 지체들이 참여하도록 기대하는 사역의 프로그램을 정하는 어떤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들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항상 물질적인 빌딩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리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 두 가지가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연구할 것입니다. 그 두 가지는 바로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적인 교회입니다. 그런 후 우리는 그 단어의 쓰임이 성경에서 교파적인 의미로 쓰인 적이 없다는 것을 잠깐 동안 연구하고 끝을 맺을 것입니다.

 

I. 우주적인 의미에서의 교회

A. 우주적인 교회는 모든 곳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몸이다.

우주적인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모든 자들, 죄를 용서함 받은 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가정 안으로 다시 영적으로 태어난 자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6:18절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회라는 단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를 건축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성경을 볼까요? 거기에도 같은 용어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20:28)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신이 우리가 되시려고 자신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1:7)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1:5)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 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자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감히 죽고자 하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으리니

(5:6-9).

그러므로 그 피로 사신바 되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지 아니한 자들이 교회로 들어가거나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교회의 커다란 문제들을 양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문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회로 들어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양적성장을 위해서만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서 온 것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기 때문이라. 그분은 그 몸의 구원자시니라........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5:23, 25)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또한 그분은 자신의 몸의 구원자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몸입니다. 몸에 붙어있는 지체가 여러분의 피를 힘입고, 생명을 공급받지 않는 지체가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의 지체가 인공적인 것이라면 그곳에 여러분의 생명이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유기적인 지체가 아니라면 기능은 조금 발휘할지는 모르지만 불편함이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으니 []께서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날마다 교회에 더하시니라.”(2:47)

주님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교회에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우주적인 교회는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 교회에 그들을 넣으시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로 구성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항상 단수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자들이 되는 것이 교회에 있게 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 구원자이시기에 교회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용서하시는 모든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 없다면 그는 예수님께서 죄로부터 구원하신 자들 가운데 있지 않은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1:22~23)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1:18, 24)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럿이라.”(고전 12:12-14)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2:38)

이제 네가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의 이름을 부르며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하더라.”(22:16)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려니와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16:16)

우리가 교회에 들어가는 조건이 암묵적으로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가려면 믿고 회개하는 것이 우선합니다. 왜냐면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면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지만 그들이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그로 인해 교회는 상처를 입고 예수께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믿고 회개하면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심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는 주변의 모든 자들에게 자신이 예수를 믿고 회개한 사람임을 선언하고 알리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탄은 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침례를 받을 때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침례를 받지 못하도록 막기도 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교회에 들어갈 자격을 가졌다는 것을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침례를 받으면 본래 우리에게 유전된 죄는 모두 물속에 장사시킨 것으로 인정하고 물속에서 나옴으로 새 사람을 입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들어가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B.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돕는 교회에 대한 다른 용어들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가족이나 하나님의 집으로 불림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하나님의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이요, 진리의 터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건축되기 위해서는 유기적이어야 합니다. 유기적이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의 집이 건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법에 의해서 건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으로도 건축되지 못합니다. 어떤 교파로도 건축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교회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진리의 기둥입니다. 진리가 아니면 그 집이 보호될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들어와도 견고하게 보호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둥은 그 집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기둥이 보호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교회는 진리로 보호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또한 터입니다. 터가 다져지지 못한 집은 건물을 건축한들 좋은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터는 기초입니다. 기초가 단단해야 좋은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 또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느니라.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나니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꼭 맞게 함께 뼈대를 이루어 [] 안에서 한 거룩한 전으로 자라가고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세워져 있느니라.”(2:16~22)

교회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로 세워져야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특히 믿음의 집안사람들에게 할지니라.”(6:10)

성경에서 흔히 사람의 가족이 이나 집안사람으로 불립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오, 우리가 그분의 영적인 자녀들이기에 하나님의 가족이나 집안 식구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미의 가족이요, 집안 식구입니다. 집안 식구는 식사를 같이하는 아주 가까운 사람입니다. 어색하고 먼 사람들은 어떤 집을 가게 되었을 때에 식사시간이 되면 일어나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친밀한 사람은 식사를 같이해도 무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이기에 함께 먹고 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교회 위에 계신 하나님의 권위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적 아버지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자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자기 아들이 빵을 구하는데 그에게 돌을 주겠느냐? 혹은 그가 생선을 구하는데 그에게 뱀을 주겠느냐?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7:7~11)

그분께서 아직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보라,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과 말하기를 바라며 밖에 서 있더라. 그때에 한 사람이 그분께 이르되, 보소서, 선생님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형제들이 선생님과 말하기를 바라며 밖에 서 있나이다, 하거늘 그분께서 자기에게 말한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자기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 곧 그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니라.”(12:46-50)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불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하시고”(16:18~19)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건축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신 후 그분은 베드로에게 왕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왕국이라는 용어는 여기서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교회는 하늘에 속해있는 부분입니다. 비록 교회가 땅에 건축되는 것이지만 그 범위는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늘과 땅 두 곳을 연결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 구원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과거 노아 방주에 들어 간 사람들처럼 모두 구원 받은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 내사 자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셨으니”(1:13)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권능에서 우리를 구출시키시고 또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기십니다. 아직 땅에 잇는 교회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하늘로 옮겨 놓는 것입니다. 왕국은 교회요, 교회는 왕국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그것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셨을 때 그분께서 그들을 교회에 더하셨습니다. 교회에 들어갔다는 것은 왕국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왕국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세우실 것입니다. 대신에 성경은 1세기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왕국이요, 왕국이 교회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왕노릇하는 자들입니다. 이 용어는 예수께서 교회 위에 계신 절대적인 통치자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분은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법이 되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위를 가지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28:18).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1:9)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12:28)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림

 

또 모든 것을 그분의 발아래 두시며 그분을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게 하사 교회를 위해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곧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니라.”(1:22~23)

예수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시오, 교회의 머리십니다. 마치 머리가 몸을 인도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교회를 다스리시는 법을 만드십니다. 몸의 지체들은 머리의 뜻을 도달하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일을 해야 합니다. 머리의 뜻을 도달하려고 하지 않는 지체들은 한 지체들이 아닙니다. 머리의 뜻을 도달하는 몸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의 풍성을 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각 예는 교회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는 친밀감을 보여줍니다. 차례대로 교회는 교회가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아마 교회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일한 교회의 머리시오, 예수님은 성경으로 다스리십니다. 이것은 땅에 속한 본부를 집중화하지 않는 것이요, 몸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요, 교회의 사역을 감독하려고 어떤 종류의 조직들을 집중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다른 조직이 필요 없고, 다른 선호도 필요 없으며, 분열된 교파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한 []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4:4~6)

너희의 생각의 영을 새롭게 하라.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런즉 거짓말을 버리고 각 사람이 자기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우리는 서로 지체니라.”(4:23~25)

그분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1:18)

 

II. 지역적인 의미에서의 교회

어떤 사람들은 교회와 개인 사이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든지 지역교회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지역교회가 감독하고 또 세우는 사역의 프로그램을 하나로 기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지역교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를 가져옵니다. 성경을 따라서 지역교회는 다음의 특징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A. 지역교회는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포함한다.

많은 구절들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지역교회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이 그의 죽음에 동의하더라.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에 큰 핍박이 있어서 사도들 외에는 그들이 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지역들로 널리 흩어지니라.”(8:1)

예루살렘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핍박이 일어나자 유대와 사마리아로 거의 모든 성도들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며 예루살렘교회를 지켰지요. 여기서 유대와 이방민족으로 복음 전파가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핍박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안디옥에 있던 교회에 어떤 대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의 루기오와 사분영주 헤롯과 함께 양육받은 마나엔과 사울이더라.”(13:1)

아마도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가 핍박을 받은 후에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세운 교회 중의 하나가 안디옥교회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들이 가서 세운 교회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이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도들의 이름이 나온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그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따로 사역의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 선지자이면서 교사이거나 아니면 선지자로, 교사로서 봉사를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목사가 교회를 세우고, 어떤 학위를 갖고 교회를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 곧 그들과 우리의 []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7일 안식교(재림교)라는 교회로부터 파생된 (안산홍)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이런 (안산홍) 하나님의 교회는 비진리로부터 나온 합당치 않은 열매입니다. 비진리는 비진리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아무튼지 고린도에도 사도바울형제로 인해 세워진 교회임에 틀림이 없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1:4)

여기서 아시아는 지금의 터키인데요, 한 나라나 아니면 한 도()정도로 아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일곱 교회가 있었습니다. 요한을 통해 예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쓰신 편지에 나타나 있는 교회들입니다.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의 사역을 구별하고, 각 무리의 사역을 설명하며 직접적으로 편지를 쓰셨습니다. 각 교회는 만일 교회가 믿음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그 자신의 촛대가 있었습니다.

곧 네가 본, 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1:20)

에베소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는 이 곧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2:1)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2:5)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4:15)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갈 때에 주고받은 일 즉, 교회는 물질적인 후원을 하고 바울형제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가 유일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서로가 별개로 지역교회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이 사역을 했고, 다른 교회는 그 사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로부터 삯을 받아 그들을 강탈하였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아니하였으니 내게 부족한 것을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채워 주었노라. 내가 모든 일에서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려고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는 아무도 나의 이런 자랑을 막지 못하리라.”(고후11:8~10)

지역교회들은 존재했고, 또 각 그리스도인들은 지역교회의 부분이었습니다. 이 교회들은 서로가 별개로 보였고, 각 교회가 다른 교회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으로 하는 성경구절이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9:31, 11:22, 14:23, 16;5, 16:1, 14, 16, 고전 4:17, 7:17, 11:16, 14:33~34, 16:1~2, 19, 고후 1:1, 8:1, 18~19, 23~24, 11:8~9, 28, 12:13, 1:2, 22, 살전 2:14, 1:1, 4, 4:16).

 

B. 지역교회는 따르는 규칙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지역교회들을 인도할 규칙들을 주셨습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고린도교회는 갈라디아교회가 지시받았던 교회들처럼 행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지시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에 물질적으로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적당하게 헌금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지도자들을 위한 모금이 아니라 성도들 간의 나눔에 있어서 형편에 맞게 하는 것을 요구 했습니다. 여러분이 나가시는 교회는 헌금에 대해 어떻게 실행하는지 알아보셨나요?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맘몬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고 있다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왜 양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걸까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 하겠지만 많은 교회가 건물을 건축하는 데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지시한 규칙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1:4)

예수님은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구체적인 지적과 명령을 보내셨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이 지시와 명령들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얼마나 슬픈 일인지요. 성경에서 주님은 지역교회들이 따라야 할 명령들과 가르침들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지시와 명령들은 각 교회마다 다르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각 교회들이 다른 지역의 교회와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행해야 하는 규칙들은 다르겠지만 한 목표, 한 주님, 한 믿음이기에 주님의 지체들이요, 주님은 그들의 머리이십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는 이 일로는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노니 그것은 곧 너희가 함께 모이는 일이 더 좋은 일이 되지 못하고 더 나쁜 일이 된다는 것이라. 무엇보다 먼저 너희가 교회에 함께 모일 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을 내가 듣고 어느 정도 그것을 믿노니 인정받는 자들이 너희 가운데서 밝히 드러나려면 너희 가운데 반드시 이단 파당도 있어야 하느니라.”(고전 11:17~19)

 

C. 지역교회는 그 사역을 감독할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1:9)

지역교회들이 감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명령이나 본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이든지, 작은 교회이든지 이것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감독을 하는 것은 어떠한 본부나 단체가 아닙니다. 그 지역교회로부터 세워진 장로들에 의해서 감독을 받습니다. 각 지역교회는 장로, 감독, 그리고 목사들처럼 봉사를 하도록 자격을 갖춘 형제들을 지명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들이 각 교회에서 그들을 위해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들이 믿는 []께 그들을 맡기며”(14:23)

오늘날 한국에서 목사가 이렇게 임명이 되는 곳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임명이 된 목사라면 분명 이단, 혹은 사이비라고 할 것입니다. 장로라고 하면 목사보다 낮게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임명되는 것이 목사가 아니라 각 모든 지역교회에서 임명하는 것이 바로 장로요, 감독이요, 목사입니다. 각 교회들 마다 다수의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장로들이 집사들보다 많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는 이 말은 참된 말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것은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 3:1~7)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거나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는 신실한 자녀들을 두었으면 임명하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 오직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1:5~9)

감독, 장로들처럼 봉사를 위해서는 먼저 자격을 갖추고 있는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사역하도록 임명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이와 같은 형제들이 다수가 있다면 그들은 사역을 하도록 임명되거나 지명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자격을 갖춘 형제가 있기 전에는 발전에 대한 미숙한 상태에서 기능을 발휘할지 모릅니다. 이럴 때에는 바울처럼 부족한 것들을 바로 잡고 세웠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그러한 실행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부족함이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구절들과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1:1)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20:17)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20:28~30)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 사람들 사이에 작지 않은 분쟁과 논쟁이 일어나니라. 이에 그들이 이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자기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니라. 교회가 그들을 그들의 길로 내보내매 그들이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지나며 이방인들의 회심을 밝히 알려 모든 형제들에게 큰 기쁨을 끼치니라.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밝히 말하니라. 그러나 바리새파에 속한 어떤 믿는 자들이 일어나 이르되,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니라.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함께 오니라.”(15:2~6)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둔 목적은 네가 부족한 것들을 바로잡고 또 내가 너를 세운 것 같이 각 도시에서 장로들을 임명하게 하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거나 제멋대로 한다는 비난을 받지 아니하는 신실한 자녀들을 두었으면 임명하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 오직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정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자기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반박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키게 하려 함이라.(1:5-9)

남자가 감독의 직분을 사모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는 이 말은 참된 말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자기를 술에 내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서 자기 자녀들을 모든 위엄으로 복종시키는 자라야 할 것이며 (남자가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으리요?) 초신자는 아니 되나니 이것은 그가 교만으로 높아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감독은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하리니 이것은 그가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 3:1~7)

 

지역교회에 있는 장로들은 그 지역교회의 사역을 감독해야 했습니다. 그 단어는 지체들과의 자신들의 교제와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오직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의 상속 백성 위에 군림하지 말고 오직 양 떼에게 본이 되라.”(벧전 5:2~3)

장로, 감독, 그리고 목사는 각 지역에 있는 주님의 무리들에게 먹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감독자는 사실 장로와 기능에서 다른 역할을 합니다. 장로들은 행정을 치리하는 데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라면 감독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잘 성장하게 하는 기능을 합니다. 또 목사는 교사와 같이 가르치는 사역을 하는 직분입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지역교회 내에서는 형제들로 불리기를 기꺼워해야 합니다. 예수의 교회는 직분에 권위가 없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권위가 강했지만 신약의 주님의 교회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새 언약으로 인해 그러한 권위는 지워졌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이 교회에서 권위를 갖는 것은 천주교회에서의 잘못 유전된 것입니다. 신약교회에서는 최고의 직분이 성도요, 형제요, 자매입니다. 요즘은 집사 위에 장로요, 그 위에 목사요, 그 위에는 감독(총회장)으로 직분이 세상의 계급처럼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미 교회에 만연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그 목적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그분으로부터 온 몸이 각 부분의 분량 안에서의 효력 있는 일에 따라 모든 마디가 공급하는 것에 의해 꼭 맞게 함께 결합되고 들어차서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느니라.”(4:11~16)

여기에 목사들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동사형입니다. 동사형으로 쓰인 곳은 사도행전 20:28, 베드로전서 5:2~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먹이거나 시중을 들거나 돌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양의 무리로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양 무리를 치고 기르고 먹이는 일을 하는 것은 바로 목사, 장로, 감독들이 지역교회에서 실행해야 할 사역들입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도들 위에서 권위를 취하고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계급으로 나누는 것도 마귀의 간교한 술수에 불과합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21:1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지니라.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하고 또,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느니라.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 앞에서가 아니면 받지 말라. 죄짓는 자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꾸짖어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게 하라. 내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선택 받은 천사들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너는 어떤 것도 편파적으로 행하지 말고 편견 없이 이것들을 준수하라. 아무에게나 선뜻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죄들에 참여하지 말며 네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라. 더 이상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있는 병을 위하여 포도즙을 조금 쓰라. 어떤 사람들의 죄들은 미리 드러나 먼저 심판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죄들이 그 뒤를 따르나니 또한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의 선한 행위들도 먼저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들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 5:17~25)

모든 지역교회의 성도들은 장로들 특히 말씀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감독들을 대접해야 합니다. 그들의 수고를 모든 성도들은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들의 수고는 억지로 하는 것이 때문에 그들의 수고를 돕는 것이 성도의 마땅함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 안에서 너희를 감독하며 너희에게 훈계하는 자들을 알고 그들의 일로 인하여 사랑 안에서 그들을 매우 귀중히 여기며 또 너희끼리 화목하게 지내라.”(살전 5:12~13)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깊이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가 회계 보고할 자인 것 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너희를 다스리는 모든 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노라.”(13:7, 17, 24)

디모데전서에 있는 감독들과 데살로니가전서나 히브리서에 있는 장로의 다스림이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나 히브리서에서는 지체들은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함부로 안수하는 것, 죄에 참여하는 것, 순결을 지키는 것 등 다스리는 자들의 행함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데살로니가전서나 히브리서에서는 성도들이 다스리는 자들을 위해 처신해야할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지역교회에서 인도하는 직분을 발휘합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을 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오류를 부인하는 것,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는 지체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으로 지체들을 가르칩니다. 인정받은 교회 사역의 범위 안에서 그 사역을 수행되어야 할 필요를 결정하는 자들입니다. 장로들은 그 결정들이 지혜롭게 되는지를 볼 책임이 있는 자들입니다.

 

각 장로직분은 그들이 지체되는 한 지역교회의 사역만을 감독할 권위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23절에서 장로들은 한 교회(자신이 사는 도시의 교회)에서 임명되어야 합니다(1:5). 베드로전서 5:2~3절에서 장로들은 너희 가운데 있는” “양 무리를 돌보고 감독한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0:17, 28절에서 장로들의 관할권은 지역 모임에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교회는 그 자신의 장로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사역은 자신들이 임명되었던 교회와 관련되는 것이며, 자신들의 실수는 그 모임에 제한됩니다. 이것은 각 모임이 한 조직과 감독 안에 있는 모든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된다는 것을 불가피하게 시사합니다. 한 교회와 교회의 지체들이 아닌 사람들은 또 다른 지역교회의 사무에 대한 권위를 가집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20:17)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1:1)

그들이 도시들을 지나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명령들을 그들에게 전달하여 지키게 하니”(16:4)

 

D. 지역교회는 교회의 사역을 행하기 위해 교회의 통제 아래에 있는 헌금이 있다.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내가 가면 너희가 너희의 편지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내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 또한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거든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고전 16:1~4)

교회들은 궁핍한 지체들을 돌보기 위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헌금은 사실 형편에 맞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대로 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모으는 일에 집중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궁핍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고후 8~9).

그 무렵에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났는데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날마다 주는 배급에서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리니라. 이에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무리를 자기들에게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을 섬기는 것은 합당치 아니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6: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내 필요를 위해 보내었느니라.”(4:14~16)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로부터 삯을 받아 그들을 강탈하였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아니하였으니 내게 부족한 것을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채워 주었노라. 내가 모든 일에서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려고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후 11:8~9)

 

교회들은 또한 복음전하는 자들을 후원하기 위해 헌금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정기적인 후원하고 또 일정하게 헌금을 내는 것을 유지하는 교회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전()시간 사역자들인데 이들을 후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사역을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손실이요, 지역교회의 손실입니다.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5:4)

각 지체들은 자신들의 통제하에 자신의 헌금을 가기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헌금으로부터 각자가 교회 무리에 기부하는 것입니다(4:32~5:11). 자기 통제 하에 있는 물질이기 때문에 헌금하는 것에 지혜로운 분별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통제하에 있는 헌금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종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느냐? 내가 선하므로 네 눈이 악하냐?”(20:15)

여기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우리가 마음의 선함으로 헌금을 하는 것이요, 교회를 돕고 지체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헌금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헌금을 할 때 자신의 인도직분 아래에 있는 지역교회의 통제로 자신의 통제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내 필요를 위해 보내었느니라.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아니하며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넘치게 될 열매를 바라노라.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들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한데 이것은 달콤한 냄새의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며 [하나님]을 매우 기쁘게 한 것이니라.”(4:15~18)

빌립보교회는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 사도바울과 그의 사역을 위해 헌금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마케도니아로 갈 때에도,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두 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을 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로부터 삯을 받아 그들을 강탈하였노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아니하였으니 내게 부족한 것을 마케도니아에서 온 형제들이 채워 주었노라. 내가 모든 일에서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아니하려고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고후 11:8~9)

고린도교회에 있을 때 바울형제는 다른 교회들로부터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교회 형제들에게서 헌금을 받아 고린도교회를 섬기고 짐이 되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헌금하는 성도들도 주의하고 헌금으로 후원받는 이들도 서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함을 경고 받습니다.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풍성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이 먼저 집에서 효성을 보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며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그러나 누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집 사람들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나쁜 자니라......만일 어떤 믿는 남자나 여자에게 과부들이 있거든 그들이 그들을 구제하게 하고 교회에 짐을 지우지 말라. 이것은 교회가 참 과부인 자들을 구제하게 하려 함이라.”(딤전 5:4, 8, 16)

 

그러므로 지역교회들은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에 사용도록 무리에 속해 있는 헌금에 대해 공동 관리와 재무를 가질 권한이 있습니다. 교회는 지체들로부터 일주일 동안 교회와 사역자들과 가난한 지체들을 위해 모아지는 것으로 헌금으로 받아 일주일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헌금은 개인들의 헌금에서 분별되고 또 구별되는 것입니다.

 

E. 지역교회는 몸이요, 단일체로서 도달하기 위해 사역을 가진다.

지역교회의 사역은 성경에서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 사역은 다른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다음을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딤전 3:15, 11:22~26, 4:14~18, 13:1~3, 살전 1:8).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하도록 기회를 주라(고전 11:1~34, 20:7, 고전 14:1~40, 고전 16:1~2, 2:12).

만일 지체들 가운데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면 가르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라(4:16, 고전 14:19, 23~26, 10:24~25, 18:15~17).

지체들의 어떤 궁핍에 육체적인 필요를 공급하라(고전 16:1~4, 4:32~35, 6:1~6, 고후 8~9).

각 지체들은 지역교회들과 상이한 사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지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도록 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지역교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권한은 아닙니다.

 

지체들이 결혼하여 남편과 아내로써 육체적인 관계를 갖고 육체적으로 아이들을 낳고 그리고 아이들을 일으켜 세웁니다(13:4, 1:28, 2:18~24, 6:1~4).

각 지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경영할 수 있습니다(4:28, 20:1~15, 살후 3:7~12, 살전 4:11, 18:2~3, 고전 9:7, 20:34, 25:14~30).

각 지체들은 자신을 경영하거나 대학교, 병원, 자선단체에 기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10:34,35, 19:9, 7:2).

각 지체들은 운동경기, 오케스트라, 운동, 정당, 사회클럽과 같은 오락, 휴양,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구입하고 또 공급할 수 있습니다(딤전 4:8, 6:31, 고전 9:24~25).

또한 개인적으로 통제하는 자들에 관한 것과 그들이 돌보는 궁핍한 사람들에 관한 교회헌금이 다릅니다(딤전 5:4,8,16, 5:4, 고후 9:6,7).

우리는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을 각 지체들이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각 지체로서는 할 수 있는 사역이 있다고 말합니다.

 

F. 지역교회는 정체성 있는 지체들이 있다.

성경은 지역교회가 그 지역교회의 지체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들을 선언합니다. 지체들은 특정한 지역교회의 일부가 되고, 그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도록 돕는데 수고할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그들이 다 그를 두려워하며 그가 제자 된 것을 믿지 아니하되 바나바는 그를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를 본 것과 또 그분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마스커스에서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선포한 것을 그들에게 밝히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루살렘에서 드나들며 []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그리스말 하는 사람들을 논박하니라. 그러나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하매”(9:26~29)

여기서 바울(사울)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제자들에게 자기 스스로 가입하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거부되었지만 바나바에 의해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바울(사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가르치며 사역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려는 마음을 먹으므로 형제들이 편지를 써서 제자들에게 권면하여 그를 받아들이게 하니라. 그가 거기에 이르러 은혜를 통하여 믿게 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이는 그가 성경 기록들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며 힘 있게 유대인들을 확신시키되 공개적으로 그리하였기 때문이더라.”(18:27~28)

아볼로가 아가야(고린도)로 갔을 때 에베소에 있는 교회는 그를 영접하도록 형제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그들 가운데 있으면서 부지런히 사역을 했습니다.

 

또한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하거든 가서 너와 그만 따로 있을 때에 그의 허물을 그에게 일러 주라.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었느니라. 그러나 만일 그가 네 말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거든 너와 함께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하라. 만일 그가 그들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교회에 그것을 말하되 그가 교회의 말도 무시하여 듣지 않거든 너는 그를 이교도나 세리같이 여기라.”(18:15~17)

형제들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쟁을 일으키거나 실족하게 하는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피하라. 그런 자들은 우리 []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 배를 섬기며 좋은 말과 빼어난 말솜씨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속이느니라.”(16:17~18)

교회는 하나님께 부여받은 죄를 계속 범하고 회개하지 않을 지체로부터 중단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전히 믿음에 충실하지 않는 그 지체들을 교회로부터 추방시킵니다(고전 5, 살후 3:6~15).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가 회계 보고할 자인 것 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13:17)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20:28~30)

지체들은 사역 안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의 혼들을 위해 돌보는 자(경계하는 자)들이 있음으로 지역교회의 일부분으로써 자기 스스로 정체성을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장로들의 감독은 그들이 인정하는 지역교회에서 만이 영향력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그들이 부담이 있는 양인지 부담이 없는 양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어떤 그룹이 아닙니다. 교회는 무리 안에 포함하는 사람인지, 포함하고 있지 않은 사람인지를 분명히 밝히도록 제한합니다. 지체들인 사람은 지체들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제외됨을 확인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에 이 일들에 관한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의 귀에 들어가매 그들이 바나바를 보내며 그가 멀리 안디옥까지 가게 하니라.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즐거워하며 그들 모두에게 권면하여 그들이 마음에 작정을 하고 []께 붙어 있으라고 하니라. 바나바는 선한 사람이요,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더라. 많은 사람들이 []께 더해졌더라. 그때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떠나서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그를 데려오니라. 그들이 만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11:22~26)

내가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종 우리의 자매 뵈베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 안에서 성도의 마땅한 도리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무슨 일에서나 그녀가 너희를 필요로 하거든 그녀를 도울지니라. 그녀가 많은 사람과 나의 구조자가 되었느니라.”(16:1~2)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추천하기 시작하겠느냐? 혹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너희에게 추천하는 서신을 보내거나 너희로부터 추천하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고후 3:1)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되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히 구별되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 곧 그들과 우리의 []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고전 1:2)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 16: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전 1:1)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편지하노니”(1:2)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1:4)

 

G. 지체들은 지역교회가 되는 것에 동의하고 또 작정해야 한다.

이 점은 앞에서 말한 모든 요점으로부터 따르는 것입니다. 지체들이 지역교회의 일부분이 되는 것에 자신을 맡길 때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지역교회를 위해 주시는 규칙들을 따르는 것과 장로들의 감독을 따르는 무리의 일부가 되는 것을 이해하고 또 인정합니다. 그들은 무리가 헌금을 가지고 있음으로 지역교회의 사역을 하도록 주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역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무리가 아니지만은 그리스도인의 무리가 지역교회로서 함께 경배하고, 사역하는 것을 명령하고, 분배하고, 그리고 조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 무리가 일시적인 협약을 한 것이 아니라 이 사역 안에서 무기한으로 계속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벽돌 한 더미는 각각 단일체의 무리입니다. 같은 벽돌들은 빌딩, 병원, 학교, 집 등의 건물들을 형성하도록 조직될 수 있습니다. 벽돌이 서로 조직하고 배열되고 함께 어울려서 의지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 무리는 지역교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배열되고 어울리고 또 조직되기까지 지역교회를 구성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같은 무리는 회사, 학교, 대학교, 지역교회를 형성하기 위해서 배열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형성되는 것이나 어떤 자격은 그들이 주어진 시간에 움직이고 있고, 그들이 따르고 있는 어울리는 것이나 분배되는 것을 의지하고, 또 움직이려고 할 것입니다. 지역교회는 지역교회가 되도록 사역, 헌금, 감독으로 조직되거나 배열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입니다.

 

결론

교파들은 교회의 형태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신약성경에 있었던 것처럼 교회를 설명합니다. 교파들은 그 형태를 왜곡한 것입니다.

 

교파는 지역교회는 아니지만 많은 지역교회들이 가입됩니다. 하지만 교파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우주적인 교회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각 교파들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믿음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파들은 지역교회 이상이요, 우주적인 교회 이하입니다.

 

그러므로 교파들은 성경에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에서 변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그들 안에 있는 회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약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는 어떤 자들이 있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1:6-9)

그들에게 가입된 사람들은 예수의 교리에 거하지 않고 또 하나님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아들]이 둘 다 있느니라.”(요이 1: 9).

참고 성구: 3:5,6; 14:12 15:9,13,14 55:8,9 10:23 3:17 고전 1:18-25, 2:1-5 22:18,19

 

교파주의는 단일체에 관해 가르치는 성경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각 교파들은 다른 교파들의 실행과 존재를 부정하는 자신들의 특정한 이름(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 오순절 등), 교리, 교회법, 조직, 경배의 계획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파의 이름, 교리 등이 다르게 생겨나는 것 자체가 바로 다른 교파들을 부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교파들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하게 경배하는 한은 여러분이 교파 안에서 믿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한 교회는 있어도 예수의 교파는 없습니다. 예수의 교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을뿐더러 교파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과 아버지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가 되도록 믿는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들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도 위해 기도하오니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에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17:20~23)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열하지 않기를 가르쳤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사람들 편으로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고전 1:10~13)

우리는 그영(the Spirit)의 일치를 계속 유지해 나가도록 분투해야 합니다.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한 []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4:3~6)

15년 전 7명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모여 시작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교회법도 없이 선호하는 사람이나 교리도 없이 다만 성경말씀으로만 예수의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누구하나 유명해지려고 하거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다만 예수의 형제들이요,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입니다. 건물도 없고 모이는 장소도 변변치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커다란 교회에서 마음껏 문명이기를 누리는 성도들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에 다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항상 이 예수의 교회에 만족합니다. 교파가 아닙니다. 만일 이 교회가 교파로 간다면 저는 서슴지 않고 그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예수의 교회는 참된 하나의 몸을 요구합니다. 참된 하나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마치 참되신 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교회에게 요구하셨던 것과 똑같은 것을 요구하는 교회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참고 성구: 고전 14:33; 3:3; 12:12,13,20; 1:27; 2:16; 5:19-21; 12:4,5

 

구원 받은 우리는 참된 한 예수의 교회의 지체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의 우주적인 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 신실한 지역교회에 가입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파들이 되기를 주장하여 어떤 무리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교파주의를 용서하고, 정당화하며, 교파주의를 변명하는 것에도 역시 거절해야 합니다. 사영리 소책자를 보면 인간의 3유형이 나옵니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자연인, 예수를 영접했으나 성숙하지 못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그리고 예수를 신실하게 따르는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여기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교파에 속하기를 원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이른 것 같지만 결국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