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천사가 이르되… 내가 여자의 비밀과 그가 탄 그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요한계시록 17:5, 7).
요한계시록 17:1-17에서 '음녀'를 '바벨론'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밀(mystery)'이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짐승'의 정체 역시 이 단어와 연관되어 있음에 주목하라.
비밀 (A Mystery)
'비밀'이라는 단어는 '신비로운' 등의 뜻으로 음녀의 이름의 일부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밀'이라는 단어는 음녀에 관한 어떤 상태를 기술하며 음녀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는 짐승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약 성경에서 '비밀'은 완전히 새로운 것, 혹은 구약 성경에서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이는 이 단어의 의미에 관해 자주 가르쳐지는 흔한 오해다). 물론 그럴 리가 없는데, 앞서 보았듯이, 구약에서 어떤 형태로든 발견되지 않는 것은 신약에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약의 '비밀'은 이전에 도입되어 구약에서 다루어졌던 어떤 것을 '열어 보이고 베일을 벗기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밀'은 구약에서 이미 보았던 것에 대한 추가적인 계시이자 주석이며, 이를 통해 구약의 계시가 온전히 열리고 드러나게 한다(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서 아들에 대한 온전한 계시가 '하나님의 비밀'[요한계시록 10:7]을 그에 상응하여 온전히 열리게 하는데, 그리스도가 곧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은 '여자'와 '짐승'을 언급할 때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여자와 짐승에 관해 이전에 계시된 내용의 베일을 벗기고 열어 보이는 과정이 있으며, 이는 당연히 해당 주제에 관한 이전의 계시가 존재했음을 전제로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두 존재를 위한 기초적인 자료가 구약 성경에서 발견될 수 있고, 또 반드시 발견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구약의 어딘가에 뿌리를 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보았듯이, 두 성경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 책의 내용이 가진 성격을 명시하며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것이다(누가복음 24:25-27; 요한복음 5:39-47). 그리고 구약으로부터 이어지는 신약 역시—"말씀"(구약 성경)이 "육신"(요한복음 1:1, 2, 14)이 된 것처럼—정확히 같은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신약은 구약을 열어 보이고 그 베일을 벗기는 것이며, 모든 이전 계시(구약과 신약 모두)의 정점을 이루는 요한계시록은 그 베일을 벗기는 작업을 완성한다. 요한계시록은 그 자체의 서두 진술을 통해—이 책에만 고유한 서두 진술이다—모든 이전 계시를 적절한 절정으로 이끄는 성경 속 유일한 책을 형성한다.
큰 바벨론, 음녀들의 어미
따라서 "음녀"가 바벨론과 불가분하게 동일시되는 것은, 이전의 계시—누구가 지칭되고 있으며 왜 이런 종류의 식별이 사용되는지를 알게 해주는 계시—없이 요한계시록 17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비밀'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전 계시가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언급된 정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전 계시의 대부분은 구약 성경에 있지만, 일부는 요한계시록의 바로 앞장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설령 이 앞장들이 없더라도—이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 동안 다루어지는 중심적 실체임을 안다면—구약 성경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와 무엇이 다루어지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7:1-19:6에 걸쳐 보이는 내용은 구약 성경의 주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장들에서는 은유와 다른 형태의 비유적 언어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는 '음녀'와 '짐승'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다(예를 들어, "불로" 태워지는 음녀의 파멸에 대한 묘사, 음녀를 "저 큰 성 바벨론"으로 지칭하는 것, 또는 음녀를 희생시켜 민족들이 누리는 "막대한 부" 등). 그리고 비유적 언어의 사용은 이 책의 첫 구절에 나오는 "보이셨느니라[세마이노semaino, 상징으로 나타내다]"라는 표현과 일치하며 책 전체에서 나타난다.
위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음녀와 바벨론의 불가분한 연관성 및 음녀의 정체와 관련하여 이전의 세 구절—요한계시록 11:8; 14:8; 16:19—에 주목하라.
첫 번째 구절(요한계시록 11:8)은 책에서 "그 큰 성"이 언급되는 아홉 번 중 첫 번째 사례로, 이 성은 소돔 및 애굽과 연관되며 "예루살렘"으로 식별된다. "그들의 시체[두 증인]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두 번째 구절(요한계시록 14:8)은 "그 큰 성"이 언급되는 두 번째 사례로, 음녀의 멸망이 나타난다(요한계시록 17-19a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진다). 여기서 음녀는 이전에 ("큰 성"과의 동일시를 통해) 소돔, 애굽, 예루살렘과 연관되었으나, 여기서는 바벨론과 연관된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이 구절에서 "큰 성"이라는 표현의 포함 여부는 사본 증거에 따라 종종 의문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사본상의 이견이 없는 요한계시록 16:19; 18:10, 21에서 세 구절 모두 "바벨론"이 그 큰 성으로 지칭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구절(요한계시록 16:19)은 "큰 성"이 언급되는 세 번째 사례로, 음녀의 최후가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추가적인 설명 자료가 주어진다. "큰 성… 바벨론"(요한계시록 18:10)은 "만국의 성들"과 분리되어 나타난다. "큰 성"이 이전에 예루살렘(은유적으로 소돔, 애굽, 바벨론과 함께)으로 식별되었으므로, 이 구절에서처럼 이방 민족들과 분리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민수기 23:9; 신명기 14:2).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큰 성"[또는 '그 큰 성', 헬라어 본문에서 동일한 구조임]과 예루살렘의 동일시 문제는 다른 소책자들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진다. 또한 성경에서 "예루살렘"이 단순히 유대 민족을 지칭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사용된다는 점에 유의하라. 심지어 "이스라엘 땅"조차 성경에서 때때로 이런 방식으로 사용된다[이사야1:21, 26; 예레미야애가 1:7, 8; 에스겔 14:11-13; 16:2; 마태복음 23:37; 누가복음 13:33; 19:41].)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는 것—즉 유대 민족을 지칭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당연히 구약 성경에서 예루살렘-바벨론 사이의 이전 연관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신약 성경의 그 어떤 것도 구약의 어딘가에 뿌리를 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루살렘-바벨론의 연관성(바벨론이 예루살렘의 은유로 사용될 수 있게 하는)이 구약에서 발견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17장-19장 초반까지 다루어지는 수많은 다른 사안들과 관련된 연관성 또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과 성경을 비교하며 구약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정확히 그러한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한번 주목할 것은,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바벨론"은 단순히 "바벨론"이 아니라 "비밀이라, [곧] 바벨론이라..."(요한게시록 17:5)로 언급되며, 앞서 보았듯이 "비밀"이라는 단어는 "짐승"에게도 사용된다( 요한게시록 17: 7).
(위의 내용이 요한계시록 17-19a장의 "음녀"를 로마 가톨릭 교회로 지칭하는 잘못된 가르침에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하라. "음녀"는 비밀이며, 이는 음녀가 반드시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어야 함을 뜻한다. 음녀와 로마 가톨릭 교회에 관한 그러한 가르침을 논리적 결론까지 밀고 나간다면, 이 교회는 필연적으로 구약 성경에서 발견되어야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 예루살렘, 그리고 짐승을 다룰 때 자연스럽게 다니엘서로 눈을 돌리게 된다. 바벨론, 예루살렘, 짐승은 창세기 3:15; 10:10; 14:18에 처음 언급되지만, 이 문제 전체를 이방인의 때의 시작, 과정, 결말과 관련하여 다루는 책은 다니엘서다.
이 책에서 바벨론 왕국은 온전히 부각되며, 다니엘은 이 바벨론 왕국과 관련하여 이스라엘과 열방을 다룬다. 또한 다니엘은 요한계시록에서 보이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게 마지막 날들에 관한 세부 사항—바벨론의 종말론적 통치자인 짐승에 관한 세부 사항—에 특별한 강조를 둔다(비록 이 인물이 창세기를 시작으로 출애굽기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그리고 구약의 여러 곳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미 소개되었을지라도 말이다).
이방인의 때의 전체 기간은 다니엘서에서 두 가지 주요 수단을 통해 묘사된다. 다니엘 2장의 네 부분으로 된 큰 신상(꿈을 통해 계시됨)과 다니엘 7장의 네 큰 짐승(환상을 통해 계시됨)이다.
다니엘 2장의 큰 신상이 묘사하는 바는 (순금 머리부터 철과 진흙이 섞인 발까지) 그 전체가 바벨론적이며, 7장의 네 큰 짐승이 묘사하는 바 또한 (사자부터 무섭고 놀라우며 매우 강한 짐승까지) 그러하다. 큰 신상과 큰 짐승들은 비록 두 가지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 정확히 같은 그림을 제시한다.
큰 신상과 큰 짐승들을 통해 보이는 내용은 이방인의 때 동안의 이방인 세계 통치를 중심으로 하며, 이 기간이 바벨론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그 시작부터 끝까지 제시한다. 이방인의 때는 바벨론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기간은 바벨론에서 끝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첫 번째 왕(느부갓네살[큰 신상이나 큰 짐승들이 다루는 시기의 첫 왕])을 사용하여—수 세기 동안 지속된 불순종 때문에—유대 민족을 그들의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셨고, 그 결과 구약의 신정 정치는 끝이 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마지막 왕(적그리스도)을 사용하여 첫 번째 왕 아래에서 자기 백성을 몰아내셨던 그 목적을 완성하실 것이다. 즉 회개를 이끌어내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신정 정치를 재건하기 위함이다.
이전의 신정 정치는 옛 언약 아래에서 세워졌고, 나중의 신정 정치는 새 언약 아래에서 세워질 것이다(출애굽기 19:5, 6; 예레미야 3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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