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1–8
로마서 3:2에서 ‘신탁, 맡기심’에 사용된 헬라어 로기온logion은 ‘발언, 부탁’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작은 신성한 말씀 또는 짧은 신성한 말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율법과 약속이 있는 구약성경 경전이 언급되어 있다고 믿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구약성경에 메시아적 약속도 포함하고 있다고 믿는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직접 계시하셨고 유대인들에게만 말씀하셨는데, 바울은 이 문제를 큰 장점과 유익으로 여겼다.
계시와 적용
바울은 하나님의 친 백성인 독실한 유대인들까지도 정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되는 것의 가치는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여기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신탁을 맡기셨다고 말한다(로마서 3:2).
정적(靜的)이거나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
바울은 복수의 의미로 ‘신탁(로기온logion)’을 사용하는데, 이는 여러 발언, 부탁을 가리킨다. 이 복수 기록은 구약전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강조한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 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 사용된 헬라어 로고스logos에서 파생되었다. 로고스logos는 일부 단어의 발화뿐만 아니라 생각의 전체 표현을 나타낸다. 그것은 말하는 단어의 활동을 강조하는 역동적인 헬라어 단어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신탁은 로고스logos가 아니라 기록이다. 로고스logos는 활동적이고, 움직임이 넘치고, 활력적이며, 목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맡기신 것은 완전히 활동하는 말씀이 아니라 말로 된 말씀인 로기온logion이었다. 로고스logos는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 내면의 소망,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나타낼 수 있지만, 유대인들이 받은 것은 로기온logion이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분명히 유리하였지만, 이 짧은 가르침과 말은 청중에게 생명과 실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움직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다른 측면을 가질 수 있다. 영적 실재로 가득 찬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logos다.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종교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말씀은 정적이어서 효과적으로 활동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것에 반응할 수 없다. 그 말씀은 그들 안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며, 그것들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그들에게 작은 말이나 말과 같은 통나무가 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건전한 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별로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설교를 듣거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설교를 들었든, 교회 모임에 참석했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어떤 내적 실재를 일으키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가? 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적용과 체험을 위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역사하게 되기를 바란다!
바울의 결론
로마서 3:4-8에서 바울은 종교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밝힌다. 하나님은 참되시며, 그분의 말씀은 의로움을 드러내신다(로마서 3:4). 종교인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 자신과도 논쟁하려는 욕망이 있다. 종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항상 논쟁하기를 좋아하지만, 바울은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로 드러날지라도 하나님은 참되시다’라고 말한다(로마서 3:4). 바울의 마지막 결론은 종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정죄 아래 있으며 그들의 정죄는 공의롭다는 것이다(로마서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