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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우물을 다시 파다

Hernhut 2014. 6. 18. 16:00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시대에 그들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들을 메웠기 때문이더라. 그가 그 우물들의 이름을 자기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26:18). 다시 우물을 파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천연적인 생명과 함께 우리의 끊임없는 필요가 다루어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우물들은 흙을 제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파야 했습니다.

 

문제는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항상 흐르시고 계십니다(36:9).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 안에서 흐르시도록 하기 위해 다루어졌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요, 천연적인 생명입니다. 우리가 파면 팔수록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는 더 흐르십니다.

 

우리는 매일 부지런히 파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우물이 멈출 때를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우물을 쉽게 멈추게 할 수 있는 진흙으로 가득합니다. 완전히 진흙을 제거하면 우리는 세상을 떠나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진흙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입니다. 살아있는 물이 계속해서 흐르게 하는 비밀은 모든 시간에 진흙을 파나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생명의 흐름이 차단될 때 우리의 육체, 천연적인 생명, 그리고 세상을 다루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영, 말씀읽기, 기도하기, 교제하기로 돌아가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어질 것이고, 우리가 영원히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꿈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이 생명 안에는 이런 꿈은 없습니다. 젊은 성도들은 그들이 구원받은 오랜 뒤에 생명의 흐름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은 파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물이 우리의 영 안에서 계속적으로 흐르기는 하지만 가끔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진흙을 제거하기 위해 파야합니다. 성령의 흐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