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하늘에 속한 공급으로 산 사람:야곱(2) / 하늘에 속한 공급들(10)

Hernhut 2014. 1. 14. 17:17

 

교회생활은 외부적인 다름을 채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

교회생활은 각자의 개성을 가진 형제자매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생활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개념은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노래하기에 알맞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려고 교회생활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연합에 관한 노래를 할 수 있지만 진실한 연합은 새 예루살렘 때까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생활은 강요하는 것에 대한 체험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추구하라고 끊임없이 밀어붙입니다.

 

종종 형제들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형제들의 집에서 연합되려고 하는 형제들은 드뭅니다. 공동생활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성도들로 부대끼게 되는 훌륭한 곳입니다. 가끔 참된 하나가 있지만 그것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더 나이 든 형제가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어떤 형제는 다른 형제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말하기도 싫어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또 다른 형제는 그 상황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모를 것입니다. 이 형제들은 리브가의 자궁에 있는 쌍둥이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작은 자궁 속에 함께 있습니다. 그들 모두 움직이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교회생활에서 성도들 가운데 진정한 하나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는 다른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서로를 부대끼게 하든 교회생활 안에 남아있는 하나가 있습니다.

 

과거에 교회생활에는 비난과 쓴 것들이 들어있어 아주 어려운 모임이었습니다. 그런 모임이었을지라도 주님은 교회생활로 어떤 성도들을 추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한 현제가 모임에 와서 논쟁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논쟁할 수 있고,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면 이 모임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마치 주님께서 특별한 한 형제를 얻게 하시려고 모든 모임을 정리하신 것이었습니다. 교회생활은 그래서 로맨틱합니다.

 

여러분은 다음 여러분이 그 형제를 보았을 때 크게 한 번 화를 내야지.”라고 화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영 안에서 일어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를 폭발하도록 하는 육체였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형제가 당신에게 한 것 때문에 속 태우는 일로 하루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 안에 있을 때 여러분은 화를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형제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화가 사라졌다는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로맨틱한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생활은 아주 작은 곳입니다. 그곳은 리브가의 자궁만한 곳입니다. 우리는 그 작은 공간에서 꽉 붙잡습니다. 서로 발로 찹니다. 서로 싸웁니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교회생활 안에 있는 서로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다릅니다. 우리 중 누구는 모가 나있고, 우리 중 누구는 거칠고, 우리 중 누구는 강하며, 우리 중 누구는 소극적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함께 건축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건축하시기 위해 이와 같이 다른 모양을 사용하시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육체적인 담은 같은 재료,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벽돌로 건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의 기질은 다릅니다. 우리의 배경은 다릅니다. 우리의 성격도 다르고, 우리의 논리도, 우리의 교육정도도 다릅니다.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 예수의 생명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함께 건축하시고 계십니다. 이보다 더 로맨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적인 로망스를 누리기 위해 교회생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안하든 우리가 감사하든 안하든 우리가 교회생활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로맨틱해집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을 위해 그의 아내를 찾으러 그영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그영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배필과 은혜를 나누시려고 은혜의 영역 안에서 기다리시는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의지를 행하시러 가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타락하기 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위치, 우리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있던 리브가로 예표 된 죄인들입니다. 그영의 관점에서 우리는 더럽혀지지 않았고, 순결해 보였습니다. 그영의 사역이실지라도 결국 우리의 기꺼움은 주 예수와 결혼하게 되었고, 교회가 되었으며, 그분의 배필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영역 안에 있는 우리는 그분의 만족과 안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을 사랑했을 때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로맨틱한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교회생활 안에 있는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놀라운 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