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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때복음6:25~30

Hernhut 2007. 8. 20. 15:2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6:25~30)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기 본문에서 우리는 믿음이 적은 자들에 관해 주님의 책망하심을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목숨과 의복을 입는 것에 열심을 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주님에게 책망을 듣는다. 왜 주님은 목숨을 유지하고 의복에 신경 쓰는 것에 책망을 하시는 걸까. 주님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은 기본적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이다. 이것은 누구나에게 주는 공평한 생명이다.

 

그런데 왜 책망하셨는가? 그것은 더 많이 갖고 더 아름다워지려는 욕심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책망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도 바로 욕심에 의한 것이다. 욕심은 염려를 낳는다. 염려하지 않는 것은 바로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다. 염려를 하게 되면 사탄과 마귀와 더러운 것들이 들어와 우리의 영을  세상과 혼합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혼합되는 것은 사람들의 사상과 이론이 성령에 속해 있는 우리를 점령하게 되는 것이다. 하와의 지식의 나무와의 혼합으로 사람의 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더 큰 혼합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이로서 우리는 서서히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26절에 천부께서 기르신다고 하셨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눈언저리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무엇을 하려고 하지말라. 다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30절 역시 우리에게 입히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보호하심이다. 창세기에서 벌거벗고 수치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셨다. 우리는 때론 아름다움을 위해 충분한 옷이 있음에도 더 멋지고 유행하는 옷으로 치장한다. 이것은 우리의 허세에 불과하다.

 

다른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이 하지 않는 말을 추가해서 말하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옷 입는 거을 보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치마의 길이가 매년 올라가고 있다. 이것이 최신 유행이다. 이것은 사탄적이다. 하지만 목회자들이 교정해 주지 않는다. 창세기에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상태를 기억하는가? 벌거벗은 상태이다. 요즘 음란과 간음, 그리고 일시적 동거, 이혼등이 보편화되고 황혼 이혼까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종류는 모두 사탄에 의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합당한 생활을 해야한다. 여름에 해수욕장, 수영장에 가서 옷을 벗고 노는 것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목회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옷입는 것조차도 충고하고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옷입기를 바란다. 

 

hernh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