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노선에서 얻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앞서 가인의 노선에 있는 일들은 아주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보았다.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의 이름으로 도시를 건축했다. 에녹은 “빠르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랏을 낳았다. 가인의 후손에서 나오는 인간 문화는 세 가지 방면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영적 생명, 생명의 노선에 있는 일들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창세기 4장에 있는 이들이 그들이 아들을 낳기 전 몇 년을 살았는지를 세었는가? 그들 중 몇 명은 100년쯤 살았을 것이다. 왜 생명 노선에 있는 이들이 그렇게 나이 들어 자녀를 낳았는가? 생명의 노선에 있던 이들도 다른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젊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생명의 노선에 있었던 이들에 의해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성경은 그들 모든 이를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들을 세지 않았다. 각 사람의 때에 따라 하나님은 아들이 가치 있게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다. 세어질 만큼 생명의 노선에 있는 누군가가 태어날 때 성경은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드디어 이 아이가 내 노선에 있는 자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것은 빨리 나아가지 못한다. 영적인 것들은 냉큼 “우리가 이긴다.”고 부르짖지 못한다. 영적인 것들은 오랜 기간이 지나서 얻게 된다. 영적인 것들은 우리의 약함, 우리의 깨지기 쉬움을 통해 얻게 된다. 우리가 누구이고, 얼마나 주님이 필요한지를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때 우리는 주님에 의해 세어지지 못했던 많은 것을 산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가 주님께 돌이키고, 절망 가운데서 그분을 부를 때 우리는 영적인 얻음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