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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뿌려진 자들

Hernhut 2016. 6. 28. 09:19


비유와 해설을 비교해 보면 길가에 뿌려진 자들은 왕국의 말씀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지만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을 실패한다. 메시지를 이해 못하는 말씀은 사악한 자를 대표하는 날짐승 즉 사탄에게 빼앗긴다. 그는 메시지를 이해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따라와 메시지를 없애버리고, 그리스도인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13:4, 19, 벧전 5:6-9). 왕국말씀에 관해 이런 유형의 체험을 하는 길가에 뿌려진 자들은 오늘날 왕국말씀을 듣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할 것이다. 그들은 메시지를 이해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들의 영적인 생활에서 메시지에 흥미가 적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탄은 그들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멸망시키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 계셨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은 호도(糊塗)했다(12:9-32, 15:1-39, 16:1-28, 23:13, 15). 결국 이사야 대언자가 말한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위가 이루어졌다. 이사야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밀랍으로 봉해졌고, 그들의 귀는 듣는 것에 둔하고, 눈은 닫혔다고 말했다(13:15a, 6:9-10). 유대사람들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통찰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있는 종교지도자 즉 근본주의적인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호도(糊塗)했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이 왕국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종자뿌리는 자의 비유 처음 부분에 설명된 자들의 반응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문제가 오늘날 기독교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때의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을 호도(糊塗)했고, 오늘날 종교지도자들도 사람들을 호도(糊塗)한다. 이것은 주로 소위 근본적인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이다. 마태복음 13장의 처음 네 비유의 연대순과 요한계시록 2, 3장에서 볼 때 마지막 시대의 기독교 상태는 왕국말씀에 관한 완전한 부패와 거절에 머물 것이다. 즉 이 메시지가 관련하고 있는 한 모든 기독교는 이 제도가 끝나는 시대에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이 될 것이고, 완벽하게 부패되고 발효될 것이다(13:33, 3:14-20).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인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교회의 성도들은 이사야 대언자가 설명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은 상태였다(3:17). 눈이 먼 상태의 이스라엘이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라오디게아교회도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수많은 각 사람은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였고, 눈도 뜨고 있었다(13:15b-16, 24:16, 31). 기독교 역시 수많은 각 성도들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또 눈도 뜨고 있다(고후 3:14-18,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