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언자들의 필요
대언자로서 대언하는 것은 교회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할 수 있는 어떠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많이 체험하지 않고, 훈련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큰 축복의 대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모든 성도들이 대언하기를 추구해야 하지만 이런 훈련을 하는 우리가 다 반드시 대언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의 직업 중에는 각종 숙련공이 있고, 각종 기능장이 하는 일이 있다. 숙련공들은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다. 의자 다리가 부러졌을 때 그는 그것을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기능장들은 어떤 특정한 생산물의 품질을 생산해 내는 경험과 훈련을 했다. 숙련공들은 쇼핑센터나 가구점에서 갖가지 물품들을 사서 다 함께 조립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기능장들이 생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지 않다. 우리는 지체들의 대언하는 것과 대언자들이 대언하는 것이 이와 같을 수 있다.
바울이 쓴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쓴 것에 따르면 모든 지역교회에 있는 어떤 성도들은 계속적으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모든 지체들이 대언하기를 훈련하지 말아야 한다,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성도들의 몫은 귀중한 것이다. 어떤 은사자들은 대언자들로 불렸지만 바울에 의하면 그들은 모임에 온 두 세 성도들 곁에서 기능을 해야 한다. 이 그림은 온 회중을 건축하기 위해서 함께 배우고, 추구하는 교회 안의 성도들 중 대언자 무리에 대한 것이다.
교회생활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대언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대언할 능력을 갖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대언자들처럼 두 세 성도들이 말을 해야 하고, 다른 대언자들은 판별해야 한다. 어떤 대언이 가까이에 앉아 있는 대언자 중 하나에 대한 것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배우고 모든 사람이 위로 받게 하기 위하여 너희가 다 한 사람씩 대언해야 하기”(고전 14:31) 때문에 먼저 대언한 사람은 잠잠해야 한다. 문맥에 따르면 이 “한사람씩”은 모임에서 모두 숙련된 성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능장”이거나 대언자들이라는 것이다. 대언자들의 사역은 본질, 생명, 그리고 풍성으로 되어야 한다. 건강한 교회생활을 하기 위해 대언자들로서 함께 기능을 하는 형제들의 무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