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음료/새벽이슬처럼

왕을 다시 데려오다

Hernhut 2025. 5. 25. 00:03

 

 

다윗 왕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온 이스라엘의 말이 왕의 궁궐에 이르렀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궁궐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어찌하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하고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네가 내 골육이 아니냐? 만일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사령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라 하였더라. 이에 그가 유다 온 백성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처럼 움직였으므로 그들이 왕에게 이 말을 보내어 이르되, 너와 네 모든 신하들은 돌아오라!(사무엘하 19:11-14)

 

반란은 끝났습니다. 압살롬은 죽었고, 그를 지지하던 모든 세력은 모이기보다 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반란이 끝났다고 해서 문제의 일부분만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압살롬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다윗도 거부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들었고, 그의 추악한 죄악으로 인해 그의 위상이 약화되었으며, 압살롬은 더 카리스마 넘치고 흥미로운 지도자였습니다. 압살롬이 사라졌다고 해서 다윗이 자동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악의 왕들

 

다윗은 이스라엘에 자신의 통치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 때문에 자신을 거부했던 지파들이 왕을 다시 데려오는 데 동의해야만 돌아올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 장로들에게 사자들을 보내 어찌하여 당신들은 왕을 그의 궁으로 다시 데려오는 데 마지막이오?하고 물었습니다.

 

앨런 레드패스는 다윗의 삶에 대한 그의 탁월한 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태어나다에서 이러한 생각을 탐구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그의 주권 회복은 그의 친족들의 자발적인 복종과 그의 뜻에 대한 그들의 사랑 어린 순종을 통해 결정되었습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이라는 이스라엘 제사장 사절들은 다윗의 부탁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거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에게 지혜롭고 진심 어린 호소를 했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격려적이었습니다. 본문은 그가 유다 온 백성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처럼 움직였다라고 말합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의 노력은 성공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환영받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고, 이는 강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통치를 강요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통치를 환영해야 하며, 그분은 우리의 마음의 반응을 강요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압살롬처럼 왕위를 노리는 자들을 물리치셔서 다른 어떤 것도 쉽게 방해할 수 없게 하십니다. 하지만 압살롬이 없어진 후에도 다윗은 여전히 ​​왕으로 영접받아야 합니다. 그는 기꺼이 마음을 다해 영접받기를 원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 그 전략은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한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사독과 아비아달의 구애에 함께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말씀은 우리 삶에 왕을 다시 모셔오기 위해 함께 역사합니다. 우리도 응답하여 왕을 다시 모셔와야 합니다.